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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나무의 말 나희덕 著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棺(관)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피우지는 마십시오

  • 별 권선옥 著 나의 어둠은 네 배경이다 이 땅의 사람들은 너를 바라보면서도 왜 네가 별이 되었는지는 모를 것이다 내 가슴에 떨군 숱한 눈물과 그리움 뉘우침 같은 것들로 빛이 되었음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애초에 다만 하나의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다는 무심한 사람들에게 나의 어둠을 말할 수는 없다 너의 배경에서 아무 흔적도 없이 사위어 가는 그 많은 날들의 그림자를 아무도 보지 못하였으리라 다만다만 하나의 반짝이는 너를 나는 가슴에 담고 앞으로도 너를 사람들은 별이라고 부르리라

    시 모음집

    별_권선옥 NEW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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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적 우연 시인시각 2011년 가을호 수록, 이운진 著 우주를 가로질러 오는 그대가 만약 그라면 나는 지구의 속도로 걸어가겠어 시속 1674km의 걸음걸이에 신발은 자주 낡겠지만 지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건 사랑을 믿는 이 별의 아름다운 관습처럼 살고 싶어서였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단단한 국경선인 마음을 넘어 천 년 넘은 기둥처럼 그의 곁에 조용히 뒤꿈치를 내려놓는 일이야 눈부신 밤하늘의 정거장들을 지나 지구라는 플랫폼으로 그가 오면 풀잎이 새에게 호수가 안개에게 바위가 바람에게 했던 긴 애무를 맨발로 해 주겠어 첫 꿈을 깬 그대에게 적막이 필요하다면 돌의 침묵을 녹여 꽃잎 위에 집 한 채를 지어주겠어 그것으로 나의 정처를 삼고 한 사람과 오래오래 살아본 뒤에도 이름을 훼손하..

  • 하늘의 무늬 조용미 著 별이 하늘의 무늬라면 꽃과 나무는 땅의 무늬일까요 별이 스러지듯 꽃들도 순식간에 사라지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불멸을 이루나 봅니다 하늘의 무늬 속에 숨어 있는 그 많은 길들을 저 흩어지는 꽃잎들은 알고 있는 듯합니다 이 꽃잎에서 저 꽃잎까지의 거리에 우주가 더 들어 있고 저 별빛이 이곳에 오기까지의 시간 또한 무한합니다 무한히 큰 공간과 거기 존재하는 천체와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인 우주를, 그 우주의 은하에서 나는 누구도 아닌 당신을 만났군요 자기 자신에서 비롯되는 마음처럼, 샘물처럼 당신과 나는 이 우주에서 생겨났군요 우주는 깊고 별들은 낮아 나는 별들의 푹신한 담요에 누워 대기를 호흡해봅니다 천천히, 당신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그러다 나는 밤하늘로 문득 미끄러지듯 뛰어내릴까요 너무..

  • 그대, 오랜 불꽃 이용준 著 시든 벚나무 그늘 아래서 그대를 생각할 때 나 아무것도 추억하지 않았네 괴로워 되뇌일수록 함정일 뿐인 꽃비 내리는 한 시절, 섭리와 운명을 무시하던 버릇이 우리의 가장 큰 행운이었으니 자꾸 사라지고 간혹 미치게 밝아오는 그대 병든 눈동자 무심코 나를 버리소서 귀머거리에게 음악이었고 벙어리에게는 부르고 싶은 이름이었던 그대, 내 가슴을 삶은 이 어두운 고기로 허기진 배를 채우소서 기도 중 빛나는 상징이고자 하였으나 악몽의 피비린내 나는 통곡밖에는 될 수 없었던 저 먼 별들, 오랜 불꽃, 그립다는 그 말의 주인인 그대, 가시밭길을 걷는 맨발의 소풍이시여

  •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 著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

  • 사랑의 사계 문장웹진 2011년 5월호 수록, 안현미 著 봄 꽃이 피었다 !!! 여름 장마가 시작되듯 사랑이 시작되었다 /////// 장마가 지나가듯 사랑이 지나갔다 가을 (마침표가 도착했습니다) . 겨울 합체란 해체를 전제로 한다? 그리하여 사랑이여, 차라리 죽는다면 당신 손에 죽겠다

  • 음력 삼월의 눈 눈사람 여관 수록, 이병률 著 한 사람과 너는 며칠 간격으로 떠났다 마비였다. 심장이, 태엽이 멈추었다 때 아닌 눈발이 쏟아졌고 눈발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길가에서 더러워졌다 널어놓은 양말은 비틀어졌으며 생활은 모든 비밀번호를 잃어버렸다 불 옆에 있어도 어두워졌다 재를 주워 먹어서 헛헛하였다 얻어 온 지난 철의 과일은 등을 맞대고 며칠을 익어갈 것인데 두 사람의 심장이 멈추었다는데 이별 앞에 눈보라가 친다 잘 살고 있으므로 나는 충분히 실패한 것이다 사무치는 것은 봄으로 온다 너는 그렇게만 알아라

  •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황인숙 著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 슬픔을 버리다 마경덕 著 빗소리가 나를 지워버렸다 늘 있었고 어디에도 없는, 너를 만지다가 아득한 슬픔에 털썩, 무릎을 꿇기도 했다 밤새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 데도 닿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너에게 감염된 그때, 스무 살이었고 한 묶음의 편지를 찢었고 버릴 데 없는 슬픔을 내 몸에 버리기도 하였다

  • 붉은 체념 박연준 著 다리가 생겼어 소리가 사라졌어 사랑을 영영 잃었으니 평생 손끝으로 말해야 해 물거품이나 될 걸 그랬지

  • 나는, 그대를 강정 著 잊지 마세요 더 많은 걸 잊어야 할 때가 올 거예요 그대 기억 속에 피는 꽃이라고 말하진 마세요 더 크고 넓은 꽃잎들을 그대는 잊어야 할 거예요 난 그대에게 줄 게 없었어요 피도 눈물도 내 것은 하나도 없는 몸뚱이를 그대가 가졌으면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요 유일한 그대 사랑이고 싶었던 날, 없는 우주와 없는 바닷속에서 숨쉬려는 그대는 찾고 싶지 않았겠지요 세상 어디에도 나는 없어요 그대가 내 속에서 달아나버리니 내가 또 있겠네요 없는 세상이 정말로 없어져버렸으니까요 다시 올 거라고 믿어요 오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새들이 아침마다 내 방 창틀에 붙매여 우는데 무어라 답해드릴까요? 지난밤 악몽 속에서도 그대는 멀쩡히 아침 출근을 하고 나는 다시 악몽의 꿀단지 속에 빠져들어요 깨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