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를
강정 著
잊지 마세요 더 많은 걸 잊어야 할 때가 올 거예요
그대 기억 속에 피는 꽃이라고 말하진 마세요
더 크고 넓은 꽃잎들을 그대는 잊어야 할 거예요
난 그대에게 줄 게 없었어요 피도 눈물도
내 것은 하나도 없는 몸뚱이를 그대가 가졌으면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요 유일한 그대 사랑이고 싶었던 날,
없는 우주와 없는 바닷속에서 숨쉬려는 그대는
찾고 싶지 않았겠지요 세상 어디에도 나는 없어요
그대가 내 속에서 달아나버리니 내가 또 있겠네요
없는 세상이 정말로 없어져버렸으니까요
다시 올 거라고 믿어요 오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새들이 아침마다 내 방 창틀에 붙매여 우는데
무어라 답해드릴까요? 지난밤 악몽 속에서도
그대는 멀쩡히 아침 출근을 하고 나는 다시
악몽의 꿀단지 속에 빠져들어요 깨어나면 정오가 넘어요
점심 먹으러 가는 그대가, 아 없어요
그래도 나는 아직 그대 꽃병 속에 박힌 봄꽃이에요
봄이 가도 나는 안 가요 갈 데가 어디 있겠어요? 그대가 가지 않는데
없는 우주, 없는 바다 한가운데 그대가 떠 있어요
아직은 죽지 마세요 내가 붙들어드릴게
잊지 마세요 잊어야 될 더 많은 걸 들고 내가 그대 속에 살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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