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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3

카테고리 설명
  • 밤 길 황인숙 著 달을 향해 걷는 발걸음 소리 목적도 축도 없이 밤이 빙글 도는 소리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소리 한숨 소리 나무가 호흡을 바꾸는 소리 담쟁이 잎사귀가 오그라드는 소리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에 성큼 담벼락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그림자 소리 너무 지쳐서 꼼짝도 못하겠어 벤치에서 한 노인이 이 빠진 달의 찻잔을 어루만지는 소리 가로등이 파르르 떨리는 소리 아무 반항 없는 시간의 기침 소리 잠이 회유하는 소리 잠시 구름이 멈추는 소리 나는 네가 밤길을 걷는 것을 본다 네게서는 달의 냄새가 난다 너는 걷고, 걷고, 걷는다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 밤의 노래 황인숙 著 너는 그것이 어둠이 끌리는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알았니 어둠 속에서 무엇이 끌리는지? 너는 그것이 바람이 끌리는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알았니 바람 속에서 무엇이 끌리는지 내 심장에서 꺼낸 밤을 비단 손수건처럼 펼친다 아주 작은 수천의 비단 손수건들의 파동으로 나는 네 베개 위에서 잠든 너를 내려다본다 나는 너를 만질 수 없다 보고 또 볼 뿐 너는 단지 네 머리에 눌린 자국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알았니 그 자국에 닿아 있는 내 무릎 자국을?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꿈보다 더 허망한 것이었을망정 내 심장에서 느티나무 같은 밤이 자란다 너를 향해 내 발바닥엔 잔뿌리들 간지러이 뻗치고 너를 만지고 싶어서 내 모든 팔들에 속속 잎새들 돋아난다

  •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황인숙 著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