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인 이유
임지은 著
슬픔이 빈티지인 이유를 말해준다니까
너는 외국 도시 이름 같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슬픔도 머플러가 될 수 있다고
한겨울 목에 두르면
부러운 나머지 북극곰이 찾아올 수도 있겠다고
슬픔이 빈티지인 이유를 말해준다니까
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겨울이 취미인 그들은 체크무늬 장갑을 샀고
하나씩 나눠 낀 채 동물원을 빠져나갔다고
내 손 위에 너의 손을 포갠다
우리가 슬픔을 숨기지 않고 가꿀 수 있다면
창틀 위에 쌓인 눈
눈이 가득히 덮인 숲
그 흰색에 가까운 따듯함으로
서로를 쓰다음었을 텐데
우리는 등이 간지러운 북극곰처럼 마주 앉아서
빈티지를 말한다
겨울이 녹고 있으니까 슬프고
기르던 개를 만날 수 없어 슬프다
오래된 것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슬픔이 빈티지인 이유를 찾으려니까
이제 슬픔은 새롭지 않아서
우리는 동네에 하나뿐인 세탁소에 간다
계절이 바뀌어도 찾아가지 않는 옷들 위로
차곡차곡 슬픔이 쌓인다
더러는 버려지거나
뒤늦게 주인이 찾아가거나
외국에 사는 누군가의 머플러가 되겠지
아빠의 옷장에서 모자를 꺼내 쓴 내가
할머니의 조끼를 입은 너에게 빈티지를 말한다
휴가지에 두고 온 애완동물처럼
새까만 발바닥을 하고서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도로의 포장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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