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허연 著
말로 한 모든 것들은 죄악이 되고 죄악은 세월 사이로 들어가 화석이 된다는 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벼랑에서 마지막으로 웃고 있을 때, 나는 수백 개의 하얀 협곡 너머에 있었습니다.
당신의 웃음이 나의 이유였던 날. 이상하게도 소멸을 생각했습니다. 환희 속에서 생각하는 소멸. 체머리를 흔들었지만 소멸은 도망가지 않고 가까이 있었습니다.
원망하다 세월이 갔습니다.
이제야 묻고 싶습니다. 두렵지는 않았는지. 망해 버린 노래처럼 그렇게 죽어갔던 과거를 당신이 어떻게 견뎌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나는 오늘도 소멸만 생각합니다. 협곡을 지나온 당신의 마지막 웃음을 폭설 속에서 읽습니다. 왜 당신은 지옥이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죽어서 다시 천 년을 살 건가요.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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