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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9. 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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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서랍

                                                                                                                      비단길 수록, 강연호 著

 

이제는 완전히 지워버렸다고 자신했던

아픈 기억들 바늘처럼 찔러올 때

무수히 찔리면서 바늘귀에 매인 실오라기 따라가면

보인다 입술 다문 마음의 서랍

허나 지금까지 엎지르고 퍼담은 세월 적지 않아서

손잡이는 귀가 빠지고 깊게 패인 흠집마다 어둠

고여 있을 뿐 쉽게 열리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뻑뻑한 더께 쌓여 있는 걸까

마음의 서랍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힘에 겨워

나는 어쩔 줄 모른다 거기 뒤죽박죽의 또 한 세상

열면 잊혀진 시절 고스란히 살고 있는지

가늠하는 동안 어디에선가 계속 전화벨이 울려

아무도 수신하지 않는 그리움을 전송하는 소리 적박하다

나야, 외출했나보구나, 그냥

걸어봤어, 사는 게 도무지 강을 건너는 기분이야,

하염없이 되돌아오는 신호음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듯

우두커니 서서 나는 마냥 낯설기만 한

마음의 서랍 끝내 열어보지 못한다

아무래도 외부인 출입금지의 팻말 걸린 문 앞에

서성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는

대낮에도 붉은 등 켜고 앉아 화투패 돌리며

쉬어가라고 가끔 고개 돌려 유혹하는 여자들의 거리에

와 있는 것만 같아 안절부절이다 순정만화처럼

고만고만한 일에 울고 웃던 날들은 이미 강 건너

어디 먼 대양에라도 떠다니는지

오늘 풍랑 심하게 일어 마음의 서랍 기우뚱거리면

멀미 어지러워 나도 쓸쓸해진다 언젠가

뭘 그렇게 감춘 것 많냐고 속 시원히 털어놓으라고

나조차 열어보지 못한 마음의 서랍

우격다짐으로 열어본 사람들 기겁하여 도망치며 혀차던

 

마음의 서랍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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