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의 일부 9
극에 달하다 수록, 김소연 著
-그렇게 차가운, 차가운 땅에 누워 멀리 흐르는 하얀 구름들만 바라보고 있는지
1
살아온 날들이 남긴 너의 사물들 정리하다
새벽을 맞았다
간밤의 거친 비에 못 견딘 꽃나무들은
손톱같이 애지중지하던 꽃잎들을 다 버렸다
골목에 떨어져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꽃들의 마지막 육체를
내가 먼저 보고 있다
2
살아서 고기를 굽고 파란 상추에 싸 먹는
내가 있고, 음식보다는 너로 인한 추억들에
날마다 체하고 손끝을 따는 나 또한 있다
3
(너를 잃은 후, 나는 산 자들의 안부는 정말이지, 하나도 궁금하지가 않다. 살아 있는 내가 끊임없이 이 육체에 무릎꿇듯, 행여 네가 그 넝마 같던 육체마저 애달프게, 그리워하고 있으면 어떡하나, 내 걱정은 그게 먼저다. 오늘 적조암이란 절에 갔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이승을 떠난 시인 진이정의 기일이었다. 그의 영혼이 식사를 하러 왔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곳은 과연 살 만한 곳인지.)
4
나도 그렇게 네가 있는 나라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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