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터
하린 著
달을 삼키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실패다
곪아터진 걸 들키지 않으려고 웃고 있는 저 달 아래
누군가 나 대신 치욕을 참고 있다
왜 중심은 쓸모없이 위험한가
바람이 앉았다 간 자리 새알이 있고
비가 앉았다 간 자리 안개가 있는데
당신이 앉았다 간 자리엔 증오가 없다
아무도 나쁜 높이에 대해 말해주지 않기에
난간의 승리를 접어두기로 하자
달을 넘보던 구름만 무탈했으니 나는 완벽한 패배로 증명된다
폭우가 오지 않는 날엔 뒤돌아서지 않으려 했다
잘 가라는 흔드는 손 따윈 없어도 좋았다
그런데 오늘은 달에게 쉽게 낭떠러지를 들키고 만다
심장 속에 만월은 없고 그믐만 있다만
황무지는 없고 수렁만 있다만
시래기처럼 바짝 나를 말려 달무리 속에 풀어 놓으련다
달 속엔 도달할 수 없는 데인 자국이 많다
달로 출퇴근하는 억지를 당분간 부리지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