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 일기
김인육 著
오늘은 이 별에서 뛰어내리기 좋은 날이에요
앨버스트로의 눈부신 날개와 코스모스 속곳은 벗어두고 가요
내가 이 별을 떠난 흔적이죠
한 오백 광년쯤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그대 사는 별까지는 좀 외로운 여행이긴 하죠
난쟁이가 사는 초록행성과, 가시 장미들이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소행성 B29에서
잠시 쉬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물고기자리를 지날 땐 부풀어 오르는 태양풍 오로라를 조심해야 해요
자칫 우리의 기억이 휘리릭 머플러처럼 날아가 버릴 수가 있어요
그러면 난 만나도 그대를 알 수가 없죠
깜깜한 암흑처럼 원초적으로 슬프죠
와우 당신이 저만치서 보이네요, 양떼를 몰며 피리를 부는 당신
내가 떠나온 별자리가 갑자기 눈부시게 환해지기 시작했어요
당신을 만났으므로 내 별은 이제 막 초신성이 되는 중이에요
그래요, 당신이면 나는 그만이죠
언제든 죽어도 좋죠
꽃이 지듯이 환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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