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시와 표현 2017년 12월호 수록, 서안나 著
감정은
입구가 좁고 가늘었다
과실주를 흔들면
나는
색이 흩어지는 사람
어둠 속에서 찬 손을 꺼내어 따르면
잠시 붉어진 얼굴이 다녀갔다
사과에서 사과를 빼앗고
빨강에서 빨강을 빼앗고
흙과 물로 물러가는 계절
사과는 쉽게 죽지 않는다
최초의 생각으로 돌아간다
어릴 적 욕조에서 숨을 참으면 아픈 얼굴이 보였다
사과처럼 붉었다
병 속엔 폭설의 들판이 가끔 잠긴다
낡은 외투를 걸치고
병든 들판을 다녀가는 사람
나는 당신의 고통에 얼마만큼 다가갈 수 있는지
입에 신맛이 고이던
검은 늪이 깊어지던
병과 함께 다정해지는
위악의 계절
와병의 계절
오늘 밤은 사과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