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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주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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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간 주행 배수연 著 거대한 수사슴을 치었어요 입을 벌리면 잉크가 쏟아지는 밤이었고 내 영국산 지프 앞에 숨을 헐떡이며 피를 흘리는 큰 뿔 사슴이 있었어요 나는 사슴이 넘을 수도 태울 수도 없어 어느새 한 시간째 경적만 울렸어요 사슴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향해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고 해요 제발 그만,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알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거야 왜 내 앞으로 뛰어든 거야? 사슴의 터진 몸에서 나오는 빛나는 주홍 알갱이들 그건 껍질이 벗겨진 귤의 살처럼 쓰러진 채 물을 흘렸고 나는 뒷좌석에서 얼굴을 싸매고 밤을 새웠어요 고개를 숙일수록 차오르는 주홍 강물 이 밤이 지나면 우린 달리는 것과 흐르는 것들의 목적지에 닿을 거야 그곳에선 너와 나의 이름을 말하는 이도 부르는 이도 없겠지만 태양 아래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