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의 집
얼룩의 탄생 수록, 김선재 著
이윽고 눈이 빛이 되는 밤이 되자
우리들은 빛나는 눈 속에서 눈을 감았다
야광충 같은 빛들이 눈동자 속을 떠다녔다
적조한 우리 집에 놀러 와
지금이 아닌 어딘가
자라지 않는 낙서가 지키는
그 집으로 놀러 가 이제
풀들이 자라고
풀들만 자라고
수풀을 헤치면
수심을 알 수 없는 표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지금은 해빙의 계절
녹은 당신은 침묵이 되고
죽은 당신은 죄가 되었다
잘못했어요 나는 평생 이 말을 하기 위해 애쓰면서 누구도 이 말을 듣지 않길 바랐죠 끝없이 끝말을 이어가요 멍 같은 석양이 번지는 저녁 붉은 햇살을 문질러 닦으며 끝없는 끝말에 골몰하지요 주문처럼 이어가지요
잘못못질질주주홍홍채, 어둠의 채도, 도대체
무엇이 잘못입니까 까닭 없는
질문만 남은 시간이 끝나면 곧
낮 같은 밤이 시작되리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 빌지 않으리
우리 집에 놀러 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말하지 않았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실패를
나는
기록하는 자입니다 오직 기록의 방식으로
지워가는 자입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아무 말이나 해왔다 어쩌면 어떤 방식으로도 할 수 없는 말들이 남았을 뿐 오직 적막과 적조와 적요가 남았을 뿐
낮 같은 밤은 계속되리
다시는 놀러가지 않으리
돌아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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