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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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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숲
                                                                                                                                                   계간 문학동네 2015년 겨울호 수록, 박지혜 著


내가 죽으면 바람이 되어줄게. 바람이 불면 나를 생각해. 바람이 불면 내가 온 거야. 그녀가 말했다. 그럼 나는 숲이 되어줄게. 네가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숲이 되어줄게. 그가 말했다. 바람 부는 숲에 있었다. 오늘은 시장에 가서 파프리카 시금치 밤 굴 라즈베리 유칼립투스 천일홍을 샀다. 어쩌면 시장에 가지 않고 숲을 걸었던 것 같다. 할 말이 없는 자의 슬픔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쓸모없고 아름다운 것들의 슬픔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다짐은 끝없이 자라나는 머리칼 같고 가본 적 없는 곳에 내리는 폭설 같다. 다짐을 할 때마다 자라나고 녹아내릴 미래처럼 허망해졌지만 혼자 다짐을 하는 일은 끝이 없었다. 대신 혼자 하는 다짐은 어딘가 가여워서 기록을 했다. 없어지고 잊힐 기록을. 기억은 반복된다. 기억을 반복한다. 빨랫줄에 이불을 널다가 브링크만이 떠올랐다. 간판을 읽으면 걷다가 집에 돌아와 시를 쓰는 시인이 생각나서 눈물이 고였다. 계단을 세는 남자를 생각했다. 계단을 제대로 셀 수는 없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되는대로 계단을 세면서 모든 합의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여름 옷감이 생겼으니 여름까지 살아 있자고 생각했다는 디자이너의 문장을 읽다가 울컥 목이 멘다. 막막한 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들. 아무런 말을 하는 날들. 숲에서는 모두 잊고 잊지 못하고 말하는 법을 새로 배우고 또다시 너를 사랑하고 싶었다. 너를 사랑하는 절정 속에 있고 싶었다. 그곳에서 나는 너의 말을 믿을 것이다. 숲에서는 가능한 일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불가능한 숲에 달이 뜬다. 잊을 수 없는 일들이 걸어간다. 쓸모없고 아름다운 것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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